[베트남 20년 차] “한국엔 히딩크, 베트남엔 박항서” 현지 교민이 본 ‘터이 박(Thầy Park)’의 진짜 이야기

박항서베트남

“한국에 히딩크가 있다면 베트남엔 박항서가 있다!”

자극적인 언론 보도 뒤에 숨겨진 현지의 진심, 밈(Meme)으로 남아있는 추억, 그리고 베트남 거주 20년 차의 시선으로 기록한 진짜 이야기.

안녕하세요! 베트남 20년 차의 시선으로, 현지의 생생한 일상과 깊이 있는 문화 이야기를 전하는 안쵸이(Anh Choi)입니다.

지금도 한국에서 축구 이야기를 할 때 ‘거스 히딩크’라는 이름이 빠지지 않고 나오듯, 베트남에서 ‘박항서’라는 이름은 단순한 축구 감독을 넘어 하나의 전설이자 국민적 영웅의 대명사입니다.

베트남에 터를 잡고 살아온 지 어느덧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에게 지난 2018년부터 몇 년간 펼쳐졌던 그 뜨거운 순간들은 결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박항서베트남
20년 차 교민이 본 박항서 감독의 진짜 이야기

🚕 “한국인인가요? 박항서 감독님을 아나요?”

시작은 2018년 초로 기억합니다.

당시 현지에서 택시를 타면 기사님들이 제가 한국 사람인 것을 확인하자마자 얼굴 가득 미소를 지으며 물어보곤 했습니다.
“한국 사람이에요? 박항서 감독님 알아요? 베트남의 정말 위대한 감독입니다. 한국인에게 너무 감사합니다!”

어디를 가나 한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친근한 인사와 환대를 받았고, 베트남 거주 20년 동안 가장 가슴 뿌듯하게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온몸으로 차오르던 시절이었습니다.

베트남축구

저 역시 그 뜨거운 열기에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당시 U-23 아시안 챔피언십 경기를 응원하는 현지 분위기를 직접 유튜브 라이브 중계로 담아 나누기도 했습니다.

베트남교민-일상

호치민의 응우옌후에(Nguyễn Huệ) 거리로 나가 붉은 이마 띠를 두르고 목이 터라 응원하던 그 밤, 저에게는 마치 초여름의 열기로 가득했던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신화가 16년 만에 다시 찾아온 듯한 소름 돋는 감동이었습니다.

그 이후 TV 광고, 길거리 전광판, 각종 매체마다 박항서 감독님의 얼굴이 도배되기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지난 베트남 거주 당시, 진행했던 기업 행사에서 박항서 감독님을 직접 뵙고 영광스러운 사진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가까이서 뵌 감독님은 화면으로 접할 때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겸손하신 분이셨습니다.

베트남20년차-안쵸이

👑 고유명사가 된 이름: Thầy Park (터이 박 / 박 쌤)

한국 사람들에게 박항서 감독을 물어보면 2002년 월드컵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 곁을 지키던 ‘열정적인 코치’의 모습을 먼저 떠올릴 것입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 그에게는 거의 고유명사처럼 굳어진 특별한 호칭이 하나 있습니다.

“Thầy Park (터이 Park)” 박 선생님

베트남어로 ‘Thầy(터이)’는 단순한 교사를 넘어, 인생의 길을 이끌어준 스승에 대한 깊은 존경과 애정을 담은 단어입니다.

2017년 그가 처음 베트남에 발을 내디뎠을 때만 해도 그는 그저 평범한 외국인 축구 감독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몇 달 뒤, 수많은 이들의 눈시울을 적신 ‘창저우의 기적(2018 U23 챔피언십 준우승)’을 시작으로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열대 국가에서 온 어린 선수들이 하얀 눈으로 뒤덮인 생소한 경기장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리는 모습은 베트남 국민 전체를 울렸습니다. 비록 결승에서 아쉽게 패했지만, 베트남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비로소 강력한 단 하나의 확신이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베트남 축구도 아시아 정상 무대에서 할 수 있구나!”

⚽ 2002 히딩크와 박항서의 흥미로운 평행이론

베트남에서 20년간 살며 박항서 감독을 지켜본 제 시선에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2002년 우리가 경험했던 ‘히딩크 신드롬’과 놀라우리만치 닮아있었다는 사실입니다.

  • 부임 초기의 무관심과 반전: 부임 초기 큰 기대를 받지 못하거나 의심 어린 눈초리를 받다가, 첫 대형 국제 대회에서 기적 같은 성과를 내며 국민 영웅으로 등극함.
  • 기본기와 체력의 이식: 화려한 기술 이전에 “90분 내내 포기하지 않고 뛸 수 있는 체력과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장 먼저 주입함.
  • 외국인 감독을 넘어선 ‘스승’의 반열: 성적을 낸 외국인 지도자를 넘어 한 나라의 국민적 자신감을 끌어올린 스승이자 고유명사(히딩크 / Thầy Park)로 각인됨.
베트남박항서

🏆 우승컵보다 길게 남은 진짜 유산: “왜 우리가 못 이겨?”

이후의 행보는 그야말로 전설이었습니다.

  • 2018년 AFF 스즈키컵 우승
  •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4강
  • 2019 아시안컵 8강
  • SEA Games(동남아시안게임) 금메달
  • 베트남 역사상 최초 월드컵 아시아 최종예선 진출

하지만 박항서 감독이 베트남 축구에 남긴 가장 위대한 유산은 진열장에 놓인 우승컵의 개수가 아니었습니다. 바로 선수들과 팬들의 ‘마인드셋’을 완전히 바꿔놓았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동남아의 맹주인 태국만 만나면 은연중에 안고 있던 심리적 위축감, “우리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라는 의문은 박 감독 시절을 거치며 “왜 우리가 못 이겨?”라는 당당한 자신감으로 바뀌었습니다.

승리의 기록은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스탯으로 남지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마음에 새겨진 자신감은 세대를 넘어 오래도록 남는 법입니다.

🫂 성적 그 이상의 울림: 자식처럼 품었던 지도자

성적이 좋았다고 해서 누구나 ‘Thầy Park’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날 저희 회사 베트남 직원이 저에게 영상 하나를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 박항서 감독이 다친 선수의 다리를 직접 손으로 정성껏 주물러주고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그 영상을 보여주며 감격스러워하던 직원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권위적인 외국인 감독이 아니라, 자식의 아픔을 차마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 그 자체였기 때문입니다. 이 영상이 베트남 전역에 퍼지면서 현지인들 입에서는 비로소 “진짜 아버지 같은 감독”이라는 말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 선수들이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 물불 가리지 않고 주심에게 강하게 항의하던 모습
  • 경기가 끝나면 다친 선수를 위해 직접 마사지기기를 채워주고 다리를 주물러주던 모습
  • 어린 선수들을 하나하나 꼭 안아주며 어깨를 두드려주던 모습

베트남 문화에서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단순히 기술을 주고받는 계약 관계가 아니라, 삶을 보호하고 함께 책임지는 패밀리(Family)에 가깝습니다.

베트남 현지 지인들은 저에게 늘 이렇게 말하곤 했습니다.

“Thầy Park은 선수들을 계약 상대가 아니라 자기 자식처럼 아껴요.”

박항서베트남

💡 [안쵸이의 비하인드] 베트남을 들썩이게 한 ‘박항서 밈(Meme)’과 상권 풍경

당시에 베트남 길거리를 거닐다 보면 참 재밌는 풍경이 많았습니다. 식당, 카페, 심지어 이발소나 길거리 쌀국수집 유리창에도 박항서 감독님의 사진이나 캐릭터 스티커가 붙어있는 곳이 많았는데요. 포스터가 붙어있으면 “대박 나는 집”이라는 재미있는 상권 공식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심지어 벤치에서 분노하며 손가락을 찌르는 모습이나, 어린 선수 볼을 귀엽게 꼬집는 특유의 표정들은 베트남 Z세대의 틱톡(TikTok)과 페이스북에서 귀여운 ‘밈(Meme/짤방)’으로 유행하며, 축구를 넘어서 국민 전체에게 친근한 아저씨이자 스승으로 소비되곤 했습니다.

박항서베트남

🤝 한국 언론의 오해와 실상: “배신이 아닌, 진심 어린 아쉬움과 축복의 이별”

간혹 한국의 일부 언론이나 유튜버들이 자극적인 조회를 위해 “베트남이 박항서 감독을 토사구팽했다”, “배신했다” 같은 자극적인 프레임으로 보도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베트남 현지에서 20년간 삶을 살아가는 교민으로서 느낀 실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정점을 찍은 후, 전술적 한계나 세대교체에 대한 현실적인 논쟁이 나온 것은 프로 축구 세계에서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이었습니다.

2022년 작별을 고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베트남 사람들이 박 감독에게 보낸 것은 비난이나 야박함이 아니라 진심 어린 아쉬움과 깊은 감사였습니다. 마지막 결승전에서 아쉽게 우승을 놓쳤을 때조차, 팬들은 축구협회나 감독을 탓하기보다 그동안의 신화에 눈시울을 적시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별의 과정조차 깔끔하고 성숙했던, 베트남 축구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라스트 댄스였습니다.

터이박-ThầyPark
베트남 축구 팬들은 박항서 감독에게 여전히 진심 어린 감사와 작별 인사를 전했습니다.

🌏 한 외국인 감독이 남긴 단어 “Thầy Park”

박항서 감독님이 떠난 이후, 베트남 축구는 후임 감독 체제에서 진통과 성장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공백의 시간 동안 현지 사람들은 “Thầy Park이 만들어 놓았던 눈높이와 빈자리”를 다시 한번 체감하곤 했습니다.

프로 축구의 세계에서 외국인 감독은 성적에 따라 왔다가 떠나는 냉정한 비즈니스 관계입니다.

하지만 2017년 ‘한국인 감독 박항서’로 찾아왔던 그는, 5년 뒤 베트남 국민들의 가슴속에 베트남의 히딩크, 그리고 단 두 단어의 깊은 이름으로 남았습니다.

“Thầy Park”

그 시절을 함께 호흡했던 베트남 사람들과 저 같은 20년 차 교민에게 2018년의 기억은 참으로 특별했습니다.

창저우 눈밭의 전율, 밤거리마다 뿜어져 나오던 붉은 함성, 그리고 벤치 앞을 바쁘게 오가며 때로는 아이처럼 화내고 때로는 아비처럼 선수들을 안아주던 작은 체구의 한국인 감독.

누군가 베트남 사람들에게 박항서 감독이 어떤 존재였는지 묻는다면, 굳이 화려한 우승 이력부터 하나하나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저 그들이 부르는 이 따뜻한 호칭 하나만 설명해 주어도 충분하니까요.

“때로는 한 나라가 외국인 감독을 부르는 그 이름 하나가, 그가 들어 올린 10개의 우승컵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음에도 안쵸이(Anh Choi)가 전하는 생생한 베트남 문화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함께 보면 좋은 베트남 문화•생활 정보

베트남 20년 차가 본 ‘동남아 한일전’… 베트남 태국 축구에 목숨 거는 이유

[베트남 중국산 소비] “중국 싫다면서 샤오미는 왜 사?” 베트남 20년 차가 본 차가운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