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베트남에서 20년째 살며 현지의 생생한 삶과 문화를 전해드리는 안쵸이(Anh Choi)입니다.
베트남에서 살다 보면 한국인인 나를 놀라게 하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중 하나는 아주 평범한 회사 직원들과의 점심시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날 점심, 신이 나서 직원들에게 고기를 먹으러 가자고 했는데 한 직원이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습니다.
“저는 오늘 채식하는 날이라서요.”
처음에는 이 직원이 엄격한 채식주의자(Vegan)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그 직원이 뜨끈한 분보(Bún bò)를 아주 맛있게 먹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죠. 당황한 저는 바로 물었습니다.
“어? 너 채식한다고 하지 않았어?”
“아니에요! 저는 음력 초하루랑 보름에만 채식해요! 😊”
1. 한 달에 두 번, 자연스럽게 ‘채식인’이 되는 날
한국에서 ‘채식주의자’라고 하면 보통 장기적으로 채식을 실천하는 사람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베트남에서는 평소 고기를 즐겨 먹는 사람도 한 달에 두 번씩 자연스럽게 ‘채식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것도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죠.
이 유연한 채식 문화의 바탕에는 불교와 베트남의 민간신앙이 있습니다.
🌕 불교의 재일(齋日) 전통
불교에서는 음력 초하루(신월)와 보름(보름달)을 마음을 다스리는 날로 여깁니다. 달의 인력 변화로 감정이 흔들리기 쉬운 날, 살생을 금하고 담백한 채식을 하며 덕을 쌓는 전통에서 비롯되었습니다.
🌒 조상 숭배와 민간신앙
음력 1일과 15일은 집안 제단(Bàn thờ)에 향을 피우며 평안을 비는 날이기도 합니다. 온 가족이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다는 의미로 채식을 함께 해왔죠.
하지만 재미있는 점은 이것이 엄격한 ‘종교적 의무’라기보다는 자연스러운 일상 습관에 가깝다는 것입니다. 절에 다니지 않는 젊은이들도 “우리 집은 예전부터 이날 채식했으니까”, “부모님이 하셔서” 라며 유연하게 참여합니다.
📌 재미있는 사실
음력 초하루나 보름이 되면 동네 채식 식당(Quán Chay) 앞까지 오토바이가 빽빽하게 들어서고, 배달 기사들이 길게 줄을 서는 생생한 풍경이 펼쳐집니다.

2. 채식 갈비? 채식 치킨? 놀라운 베트남 채식의 세계
베트남 채식 식당에 갈 때마다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음식의 다양성입니다. 한국에서는 채식이라고 하면 샐러드나 두부, 나물을 먼저 떠올리지만 베트남에서는 하나의 새로운 음식 세계가 펼쳐집니다.

🥬 다양한 메뉴
쌀국수, 분보, 껌땀, 분리에우, 짜조, 심지어 전골까지 거의 모든 베트남 음식의 ‘채식 버전’ 존재
🥬 식재료의 비밀
콩 단백질(Sườn non chay)뿐만 아니라 버섯 자루, 잭프루트(Jackfruit) 등을 결대로 찢어 진짜 고기처럼 만드는 베트남 사람들의 손재주로 탄생한 ‘채식 고기’, ‘채식 치킨’, ‘채식 생선’ 활용
처음에는 ‘고기를 안 먹으려고 채식하는 건데, 왜 굳이 두부나 버섯을 갈비 모양으로 만들어 먹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이 또한 꽤 영리한 방식이더군요!
1️⃣ 부담 없는 실천: 익숙한 식사 형태와 맛을 유지해 채식의 진입장벽을 낮춥니다.
2️⃣ 스트레스 완화: 먹고 싶은 것을 억지로 참는다는 느낌이 적습니다.
3️⃣ 직관적인 식감 상상: ‘갈비’, ‘치킨’ 등의 이름 덕에 어떤 맛과 식감일지 쉽게 상상할 수 있습니다.
우연히 직원들과 채식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된 적이 있습니다. 베트남 음식을 워낙 좋아하지만 처음 접하는 채식 요리라 내심 걱정되기도 했습니다. 고기가 들어간 일반 음식과 미묘한 맛의 차이는 당연히 있었지만, 생각보다 훨씬 훌륭해서 아주 맛있게 점심을 즐겼습니다.
그런데 식사 후에 은근히 놀랐던 부분은 바로 가격이었습니다. 양질의 채식 요리들은 일반 식당의 밥값보다 오히려 더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해 보면 베트남에서 채식을 즐기는 많은 사람들은 건강과 가치를 위해 그만큼의 비용을 기꺼이 투자하고 있는 셈입니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나 새로 진출을 준비하시는 분들이 흔히 ‘가격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고민하시곤 합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면, 베트남 사람들은 단순히 저렴한 것만 찾는 것이 아니라 정말 필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가격이 조금 나가더라도 과감하게 지갑을 연다는 점을 실감하게 됩니다.
💡 [안쵸이의 현지 팁] 알아두면 유용한 베트남어 한마디!
베트남 여행이나 현지 생활 중 채식 음식을 경험해 보고 싶다면 이 단어만 기억해 두세요!
- Ăn Chay (안 차이): 채식을 먹다
- Quán Chay (콴 차이): 채식 전문 식당
- Tôi ăn chay (또이 안 차이): “저 오늘 채식해요!”
(식당에서 채식 메뉴를 찾을 때 쓰기 좋습니다)
3. Z세대가 만드는 새로운 ‘웰니스(Wellness)’ 채식 트렌드 🥗
예전에는 채식이라고 하면 어르신이나 절, 음력 절기를 떠올렸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젊은 직장인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채식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이들은 달력을 보고 채식을 하지 않습니다.
- “몸을 좀 가볍게 만들고 싶어서”
- “일주일 동안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면서 식단을 관리하려고”
이들에게 채식은 ‘덕을 쌓는 일’을 넘어 현실적인 라이프스타일입니다. 대도시를 중심으로 식물성 우유, 콤부차, 그래놀라, 샐러드 바 등 플랜트 베이스(Plant-based)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4. 베트남 사람들의 유연하고 지혜로운 삶의 방식 ☕
많은 국가에서는 식단에 이름(Keto, Vegan, Clean Eating)을 붙이고 엄격하게 규칙을 지키려 노력합니다. 하지만 제가 본 베트남의 생활 방식은 조금 더 유연합니다.
- 아침: 몸을 생각해서 셀러리 주스 한 잔
- 점심: 회사 동료들과 껌땀(돼지갈비 덮밥) 맛있게 먹기
- 오후: 달콤한 베트남 연유커피 한 잔의 여유
- 저녁: 헬스장에서 운동 후 주말엔 친구들과 편하게 전골 즐기기
기존 일상을 전부 뒤엎는 것이 아니라, 바쁜 일상 속에 ‘조금 더 건강한 선택’을 하나씩 더해가는 것, 이것이 바로 베트남식 웰니스의 매력입니다.

💡 엄마의 채식 반찬과 딸의 샐러드
어느 현대적인 베트남 가정의 저녁 식탁 풍경이 떠오릅니다.
- 엄마: “오늘 보름이니까 채식 햄 먹고 마음 편하게 가지렴.” (수백 년 이어진 전통과 종교)
- 딸: “요즘 몸매 관리 중이라 동물성 고기 줄이고 샐러드 먹으려고요.” (트렌디한 웰니스 라이프)
시작한 이유는 전혀 다르지만, 두 사람은 결국 같은 식탁에 앉아 웃으며 채식을 함께 즐깁니다.
✍️ 글을 마치며
예전에는 누군가 “오늘 저 채식해요” 라고 하면 무조건 채식주의자인 줄 알았습니다. 베트남 생활을 하면서는 이렇게 물어보는 법을 배웠죠.
“계속 채식하는 거예요? 아니면 오늘만요?”
“오늘 보름이라서요? 아니면 몸 좀 가볍게 하려고요?”
베트남의 채식 문화는 현대적인 삶 속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옷을 갈아입고 있습니다.
엄격하게 강요하지 않고, 억지로 참지도 않는 삶. 먹고 싶은 것은 즐기되 가끔은 몸과 마음을 위해 가볍게 비워내는 것. 어쩌면 이것이 제가 베트남에서 배운 가장 현실적이고도 귀여운 ‘채식 철학’이 아닐까 싶습니다.
앞으로도 현지에서 직접 느끼고 경험한 생생하고 재미있는 베트남 이야기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